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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by 책하나 2019.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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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입니다.
2015년에 나온 베스트 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세 번째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의 1편을 읽었고, 저자 채 사장님의 다른 책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었습니다. 이번 세 번째 시리즈는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습니다. 뒤에 참고도서 목록 제외하고 553페이지나 됩니다.
읽다 보면 얕은 지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깊이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지적 대화를 안 하고 안 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낯선 세계관 익숙하지 않은 내용을 읽으면서 왜 이걸 읽어야 하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책의 중반쯤 저자의 글 중에 “나의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는 문장이 제마음을 열었습니다. 이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일원론’을 읽는 나는 어색합니다.
자아와 세계가 전혀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라는 가르침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위대한 스승들, 그리고 거대사상입니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일곱 가지 주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주, 인류,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 1장 우주와 2장 인류는 세계를 다룹니다. 138 억 년 된 우주와 인류를 빠르게 다룹니다.
빅뱅이론, 다중우주 평행우주, 양자물리학,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 진화론의 오해와 진실 등을 다룹니다. 여기까지 듣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분 있으시죠? 여기서 이해가 안 된다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진도가 안 가나니 그냥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구조를 따라가는 것이니 그냥 읽어나가셔야 합니다.
학창시절 배웠던 진화론에 대한 오해는 잠깐 얘기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오해는 진화를 선형적인 발전의 모형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시적인 박테리아가 어류와 양서류가 되었고 이후에 파충류와 포유류가 생겨났고, 마지막에 이르러 유인원과 현대 인류가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을 때 ‘그렇다면 많은 시간이 흐르면 원숭이도 언젠가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화는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방사형으로 확산 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단세포 생물 중 한 개체에서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탄생했습니다.
5억 년 전에 이 다세포 생물 중 최초의 척주를 가진 동물인 피카이아가 등장합니다. 이어서 여러 척추동물 중에서 어류가 등장했고, 어류 중의 하나에서 파충류와 양서류가 등장합니다. 파충류 중 일부가 조류가 되었고, 포유류 중 일부는 유인원이 되었습니다. 유인원 중 일부는 원숭이나 침팬지가 되어 지금까지 숲에 완벽히 적응해 살고 있고, 다른 유인원의 한 가지는 나름의 방향으로 진화하며 인류를 포함하는 영장류로 나아갔습니다.
인류가 진화의 끝에 도달한 가장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화에 대한 오해입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일도, 사람이 원숭이가 되는 일도 없습니다. 각각의 종은 가지를 뻗어가며 각자의 진화과정을 밟을 것입니다.

3장부터 7장까지는 세계와 자아와의 관계를 다룹니다. 3장 베다, 4장 도가, 5장 불교에서는 동양의 관점을 6장 철학, 7장 기독교에서는 서양의 관점을 살펴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 ‘축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기원전 5세기를 전후에 활동한 현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축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축의 시대는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시대입니다.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져 힌두교의 철학 사상을 나타내는 일군의 성전이라고 합니다.)와 고티마 싯다르타 (석가모니)가 등장했고, 중국에서는 노자와 공자가 활동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태어났습니다.
축의 시대라는 용어는 독일의 실존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1949년 출간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정신적 기원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도가, 불교, 기독교라는 용어는 이해가 되리라 생각되어서, 저도 처음 알게 된 ‘베다’를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는 3500년 전 스스로를 아리아인으로 불렀던 민족의 이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리아인은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동하는 지역과 원주민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을 쉽게 정복하고 그들과 섞이면서 고대인도인 이 되었습니다.
아리아인이 인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손에 [베다]가 있었습니다. [베다]는 산스크리트어로 지식, 지혜, 앎을 뜻합니다. 종교적이고 신화적이며 철학적인 방대한 문헌으로,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문서 중 하나입니다.
[베다]는 시작도 없고, 저자도 없는 경전입니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신에게서 직접 들은 내용이 오랜 시간 구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1500년을 전후로 산스크리트어로 문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가 왜 이 낯선 문서에 대해 알아야 할까요?인도는 한국과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먼 나라입니다. 실제로 유럽이 거리상 더 멀지만, 유럽의 문화는 왠지 친근합니다. 인도의 사상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인도 사상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심적인 사상입니다. 인도 사상의 뿌리가 되는 [베다]는 세계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류에게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문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약성경]이고, 다른 하나가 [베다]입니다. [구약]은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한 뿌리가 됩니다. 이 세 종교는 인류 절반의 세계관을 형성해 왔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세계관은 [베다]에 기반을 둡니다. [베다]는 [우파니샤드]와 힌두교, 불교의 뿌리가 되었고, 이들은 인도와 동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굳이 낯선 이 [베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의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나의 세계관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걱정해 주는 이들, 가족, 학교, 사회, 국가, 이념, 종교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아는 그것조차 위험한 일이라고 나를 단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자기 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자 하는 사람은 언젠가 내면의 경계를 넘어야 합니다.

책은 [베다]를 간직했던 고대 인도인부터 노자와 공자, 인도와 동양의 연결고리 붓다, 서양으로 넘어가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예수,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이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자아와 세계의 통합이라는 거대사상들을 탐구합니다.
우리는 오래된 고대의 지혜를 들춰봐야만 하는가? 일원론의 세계를 알아야만 할까요?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고전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전이 어렵기 때문일 수도, 철학과 인문학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우리가 반쪽의 세계밖에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인류의 사유를 출발시킨 위대한 스승들은 일원론을 말해왔는데, 우리는 이원론의 세계에서 한 걸음도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고전을 펼치고 그 안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내면세계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일원론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세계관’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세계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수감자라는 것을 모르는 수감자와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세계관은 감옥입니다. 세계관은 자신 내면의 감옥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세계관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며 죽습니다. 그 바깥으로도 나가지 않고, 심지어 그 바깥에 있는지조차 상상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각가지 느낌과 상념이 사실은 우리가 이원록적 세계관에 발 딛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음이나 정신은 소홀히 하고, 눈앞의 물질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나의 인생이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도, 나의 내면은 보이지 않으니 그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못 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게 되는 것도 우리의 자아와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WV1Y-kglCrI

책은 챕터 마다 중간정리와 최종정리가 있습니다. 작가의 배려인지 편집자의 배려인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정리가 됩니다. 하지만 저에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였습니다. 이 책은 한 번 더 리뷰하겠습니다.
나의 세계를 넘기 위한 분들은 읽어보시고, 읽지 않으셔도 지적 대화를 이어가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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